오타루 오르골당의 예쁜 오르골
옛날 여행 이야기 (아날로그 여행)

나쁜 아빠의 반성문으로 쓰는 홋카이도 여행기 8

아틀란티스 증후군을 가진 나쁜 아빠가 퍼진 날!

  

지하철로 삿포로 역으로 돌아왔다. 오타루행 기차를 탈 예정이지만 그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오늘 점심은 기차에서 에키벤(기차역 도시락)을 먹는 것이다. 기차로 이동하는 시간은 단 35분이지만 에키벤을 먹으며 기차 여행울 하는 것만 생각해도 기분이 좋아 진다.  

삿포로 역 구내에서 에키벤을 찾았는데 없다. 안쪽을 들어가 보니 도시락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내가 원하는 에키벤은 없다. 아내는 에키벤을 기차에서 먹는 도시락 정도인 알았는지, 열차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도 열심히 에키벤을 찾는 내가 이상했나 보다. 결국은 물어서 반대쪽에 에키벤 집을 발견했으나 문이 잠기고 사람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옆의 키오스크 깡통의 도시락을 고르려는 순간 에키벤 매장의 직원이 도착해서 우리는 에키벤을 고르는 즐거운 시간을 맞이했다.

삿포로 역 에키벤
삿포로 에키벤포장지도 너무 예쁘죠!

 큰 녀석은 불고기라며 1100 엔짜리 도시락을 골랐다. 고기 덮밥 같은데 왜이리 비싼 지 속으로 야속했지만 (나쁜 아빠!!) 시간이 없어서 찜! 작은 녀석도 같은 것을 달라고 한다. 이건 아니지! 게살이 들어간 걸 사야지!라고 설득을 해도 막무가내다. 돈도 절약할 겸, 다양한 종류를 먹어 볼 겸, 김초밥과 유부초밥이 있는 도시락을 억지로 떠맡기고 형과 나눠 먹으라고 했다. 아내는 내 눈치를 보고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모양 (밥과 반찬이 있는 도시락)의 에키벤을 골랐다. 그리고 나는 게살, 성게, 연어알 등이 올라간 찌라시스시 (일본에 오기 전부터 찜해  두었던 것)를 당당하게 골랐다. 비닐 봉지에 담아 주면서 고기 덮밥은 도시락 아래의 줄을 당기라고  일러 준다. ‘아, 그렇군 뜨겁게 데워지는 일명 ‘따시락!’이구나 그래서 비싸군’하고 생각했다.  (정신이 없어서 가타카나로 쓰인 도시락의 이름을 미쳐 읽지 못했다. 아직도 가타카나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삿포로 역 에키벤 포장 제거
포장지를 제거한 에키벤, 대강 고른 줄 알았는데 아내 것도 좋네요!

녹차를 하나 더 사서 기차에 오르자마자 우리는 흥분했다. 시트를 돌려 머리를 맞대고 포장지를 하나씩 뜯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가타카나를 읽어 보니 고기덮밥 따시락은 바로 징기스칸이였다. 삿포로에 오면 꼭 먹으리라 했던 징기스칸!  비싼 가격에 맘 놓고 먹지 못하고 (나쁜 아빠!!) 여기서 에키벤으로 만나는구나! 겉으로  들어내지 못했지만 징기스칸을 먹는다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저녁에는 큰 녀석의 소원대로 회전초밥을 먹어야 하고, 내일은 후라노로 길을 떠난다. 그래서 징기스칸을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비싸지만 고놈을 골라준 녀석에게 고마웠다.  따시락의 줄을 당기면 김이 올라올 정도로 뜨거워 진다. 아내가 들고 있다가 뚜껑 사이로 뜨거운 김이 나와 떨어뜨릴 뻔 했다. 혹시나 이런 도시락을 드시면 반드시 손으로 잡지 말고 줄을 당길 것!  

참고) 삿포로의 명물 요리인 징기스칸(ジンギスカン)은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양고기 구이 요리입니다. 몽골의 침략자 칭기즈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특별한 모양의 돔형 불판에 양고기와 채소를 함께 구워 먹는 것이 특징입니다.

작은 녀석은 징기스칸 고기만 쏙쏙 빼서 먹었다. 집 같았으면 한바탕 싸웠을 것 같은데,  큰 녀석의 양보로 사이좋게 먹을 수 있었다. 늘 커다란 배낭도 도맡아 들고, 심부름도 잘하고, 동생도 잘 보는 이녀석, 보면 볼수록 내 어릴 적 모습을 꼭 닮은 것 같다. 전혀  걱정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    

징기스칸은 두툼하고 소스가 잘 베어 있어 정말 맛있었다. 밥이야 일본 쌀이 워낙  맛있으니 부족함이 없다. 김과 유부 초밥은 갯수는 얼마 안되지만 큼지막하니 가격이 싸도 한 끼 양은 된다. 아내의 것은 기억이 안나고 (특이한 것이 없어 보였다. 준수한 편이고 다른 것에 비해 특색이 없을 뿐이다.)  내 것은 기대한 맛이 난다. 새콤한 밥에 게살, 연어알 등이 통통하게 입에 씹힌다. 게를  좋아하는 작은 녀석 눈치를 보면서 아내의 밥에 각종 해산물을 올려 준다. (홋카이도에  왔는데 게를 못사줘서 미안허이~~~

오타루행 열차 차창 밖의 바다 그리고 녹차 

이렇게 정신없이 밥을 먹고 나니 이제 바다가 보인다. 바다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나는 흐린 날씨지만 바다를  봤다는 것 만으로도 세상이 내 것이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작은 녀석에게 카메라를  주고 마음 껏 찍게 한다.  원래 카메라 주인은 작은 녀석이다. 꿈이 스필버그와 같은 영화 감독인데, 이런 경우는  마음껏 찍게 해 주어야지.  

원래 디카가 망가지고 10만원 초반의 디카를 구입해 작은 녀석에게 주었다. 큰 녀석은 닌텐도, 전자사전, 엠피 쓰리 등 필요할 때마다 사줬는데, 사실 작은 녀석한테는 해준 게 별로 없다.이 카메라를 받고 얼마나 좋아했는 지! 소속만 자기 것이라도 잘 가지고 논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동영상 셀카로 여행을 리포트를 하는 것이다. 전주 여행 때 기차만  타면 기록으로 남겼는데, 여기서 기차를 타게 되니 생각이 났나 보다. 즐겁게 리포팅을  한다. (귀여운 녀석!)  

미나미 오타루에 도착했다. 내가 꿈꾸던 오타루인 것이다. 그렇지만 소망과는 달리 비가  내리고 있다. (러브레터의 눈 덮인 오타루는 아니더라도 맑은 날의 오타루였다면…) 

오타루 오르골 당

오타루는 오르골당등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 많아 비가 와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메르헨 교차점을 찾고 오르골 당에 입장할 때 까지는 이런 꿈이 깨지지는 않았다. 옛날 여행기에 처음 보고 이 곳 때문에 오타루에 오고 싶은 가장 큰 이유가 되었던  곳이다.  오르골당은 상상했던 것 보다 더 크고, 더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츠시마, 유후인,  하우스텐보스에서도 오르골 가게를 보았지만 이것은 거대한 원목 팬션 안에 오르골을  가득 채워 놓은 느낌이다. 아리랑 등 한국 음악이 있는 오르골을 심심찮게 찾아 볼 수 있고, 예쁜 유리 제품이나  귀여운 것들도 너무 많이 있었다. 이 비에, 이 규모에도 사람들이 꽤 많으니 세계  여러 나라 관광객이 꼭 찾는 곳이라는 생각이다. 사진에서 보았던 것처럼 2층도 있고, 사진으로 보지 못했던 2층에도 귀한 오르골을 전시해 놓으니 규모면에서는 최대가  아닐까?  

오르골당위 오르골들

그렇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 되었다. 우산을 옆구리에 끼고, 카메라는 반대 손에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야 하는 게 영 불편했다. 아이들에게 짐을 맡겼다가는 오르골을 처서 떨어뜨리는 불상사가 예견되기 때문에 내가 가능한 많이 가져야 했다.  다른 식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데로 흩어지고, 특히 요주의 인물인 작은 녀석은 그 스타일 대로 천천히 거의 모든 코너에서 음악을 감상하신다. ‘가시손’이라구 알 지 모르겠지만 그 녀석 손에만 가면 고장이 나거나 부셔지는 경우가 많아 특히 신경을 써야  했다. 아내에게는 이렇게 좋은 곳에서 충분한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웃음을 지우며  마음껏 보고, 맘에 드는 것은 사주겠다고 말했다. ‘큰 녀석에게는 여자친구 선물 찾고 있냐?’ 라는 농담을 날렸지만 긴장과 부담의 연속이였다.  

갑자기 신경을 많이 쓰니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도 멍 해졌다. 구경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소음성 난청이 있어 실내에서 음악도 잘 들리지 않았다. 다리도 아픈 것  같고, 피곤이 몰려왔다. 쇼핑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아내는 가격 때문에 살 생각도 안한 것 같다. 돈 많이 벌어서 제일 좋은 것으로 보답하리.) 나중에는 체력이 안돼서 아이들만 눈으로 열심히 따라 다녔다. 고가의 오르골을 전시하는 곳에서는 아예 손을 대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줬다.  (이쯤이면 신경 과민이다.!)  

결국 스스로가 무덤을 판 샘이 된다. 이렇게 과민 반응을 보였으니, 비 속에 다른 곳에  들어갈 때마다 짐이며 우산을 비닐에 넣고, 빼는 것이 정말 성가시다. 아내는 아이들 것까지 3개씩 하는데도 전혀 변화가 없다. 이후 가라스관, 베네치아 미술관에서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지만 신경은 날카로워져 있었다. 이러니 어제의 큰  녀석처럼 내가 쉽게 피곤해 졌다. 이 경우 두뇌 활동도 마비가 되는지,  쉴 자리도 찾지 못하고 운하까지 오게 되고, 운하에서도 특별히 쉴 곳을 못찾아 헤매다  교회 건물앞은 벤치에서 간신히 휴식을 했다.  

오타루의 교회
오타루에서 퍼진 나쁜 아빠에게 쉼이 되어 준 교회

비오는 날의 오타루가 운치가 있어야 했지만 무엇을 했나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지나 갔고, 가고 싶은 곳도 충분히 돌아 보지 못하고, 아이들에게도 도대체 무엇을 보여줬는지 미안하기만 했다. (반성!) 가장 방문하고 싶었던 곳에서 발도장만 찍고 삿포로로 돌아온 것 같았다.  (사진이 남았으니 그야말로 다행이다.)  

삿포로 돌아오는 길에 기차에서 단 잠을 자니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이제  저녁 식사는 큰 녀석이 원하는 회전초밥이다! 오늘 밖에는 먹을 시간이 없어 ESTA 의 톳피로 향했다. 톳피에서 식사하려면 듣기에는 평균 40분은 기다려야 한다는데 아니나 다를까 가게  안팍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줄지어 앉아 있다. 다행인 것은 우리 바로 다음에 10명 정도 되는 일본 학생들이 몰려 왔다.   

톳비와 라면공화국

생각보다는 많이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녹차를 타고 간장과 생강 등을  덜어 그릇에 담는 것은 너무 익숙하다. 이번 여행에서 많이 느낀 것은, 이제 나에게는  일본이란 나라가 너무 익숙하다는 것이다. 교통 시스템이나 음식, 쇼핑, 상점가와 가게의 특징, 비즈니스 호텔… 이 모든 것이 익숙하니 국내 가까운 도시에 방문 온 느낌이 너무 많이 들었다. 해외 여행이라는 느낌이 별로들지 않았던 것이라 마냥 좋은  것은 아니였다. 온천 마을이나 후라노 같은 관광지가 아니면 도시 생활은 마치 몸에 베어 있는 익숙한 느낌이었다. (삿포로가 이러니 동경은 말할 수도 없겠지만….)  

오기 전에 아이들과 약속했다. 없는 돈에 떠나는 여행이니 너희도 하나 씩 이번 여행에  기여하라고(나쁜 아빠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각각 식사 한 끼씩은 스스로가 쏘는 것으로 정했다. 작은 녀석은 첫날 먹었던 리틀스푼의 식사큰 녀석은 이 회전초밥집에서 식사책임 지기로 했다. 아이들이 회전 초밥을 좋아하는 이유는, 특히 해산물을 싫어하는 큰 녀석이 좋아하는 이유는, 돌아가는 벨트에서 원하는 음식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아내가 일반 스시집에서 스시를 시켜서 돌려줄테니 회전 초밥을 포기하라 했을까.  

소원 대로 초밥을 골라 먹는다. 작은 녀석은 금액에 상관없이 자기 먹고 싶은 것을  고른다. 나는 아들의 용돈을 생각하며 싼 것으로만 적당히 시간 봐 가며 먹는다. (호텔에  돌아가서 라멘이라도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품고…..)  

문제는 닭 튀김에서 생겼다. 거의 식사가 끝나갈 무렵 닭튀김 접시를 본 엄마와 큰아들은 그것을 주문하겠단다. 230엔에 탁구공 만한 것이 네 덩이라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명색이 스시집인데 치킨이야 흔히 먹을 수 있는 것이라 반대를 하고 싶었지만 호스트가 먹자고 하니 주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주문을 하고 나머지 식사는 끝이 났다. 그래도 닭튀김이 나오지 않는다. 20분이 흘렀다. 그래도 나오지  않았다. 슬슬 두 사람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도큐 한즈도 가야하고 돈키호테도 가야하는데  벌써 7시가 넘어간다. 톳피에서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다른 식구도 너무 오래  걸린다는 생각이 드는 지 작은 녀석을 빼고는 내 눈치를 본다. 취소하고 싶었지만 한국 사람 체면도 있고… 닭은 주문이 들어간 이후에 준비하여  튀기겨 나오는지 30분 가까이 되어서야 나왔다. 눈치를 보며 먹었으니 맛이나  있었을까? (나는 먹지 않았다. 정말 나쁜 아빠다!)  

삿포로 톳비의 문제의 닭튀김, Feat 먹고 쌓아 놓은 접시를 보라!
삿포로 톳비의 문제의 닭튀김, Feat. 다 먹고 쌓아 놓은 접시를 보라!

도큐 한즈눈 포기하고 (보통 1 시간이상을 봐야하는데…) 돈키호테에서 간단하게 눈요기만 하고, 사실 장난감 코너를 데려가고 싶었는데, 같은 층에 어덜트 샵이 있는 것으로 보여 시간 없다고 아이들을 끌고 나왔다. 그래서 결국 삿포로에서 쇼핑은 없.었.다. 동경을  몇번 씩이나 가며 아내를 꼭 데려가고 싶었던 곳이 도큐 한즈인데… 사실 머슴아들을  데리고 쇼핑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도큐 한즈(Tokyu Hands)는 다양한 생활용품, 문구류, 인테리어 용품, 주방용품, DIY 용품 등을 판매하는 복합 쇼핑몰입니다.)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며 호텔에 도착하고, 아내가 온천에 간 틈을 타서 방 정리를  했다. 아이들은 오늘도 카드를 가지고 신나게 논다. 2인용 게임을 가르쳐 주었더니 아빠를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뱃속에 라멘이 메아리쳐 울렸지만 오늘 기분에 혼자서 라멘을 먹는 것이 왠지 서글퍼 보여서 포기하고 3일차 여행을 끝낸다.

  

내 성격이 문제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가끔가다 아틀란티스 증후군이 아닐까 하는  정도로 사서 걱정을 하죠. 의무감이 여행의 즐거움을 누르면 이렇게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생기는데…. 지금와서  생각하면 아쉬움이 가장 많이 남는 하루였습니다. 한 템포만 늦춰 생각을 바꿨으면 많은 곳을 둘러 보지는 못해도 한 곳이라도 즐겁게 돌아 봤을 텐데…  ( 이 성격은 거의 20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고처지지 않고 있네요. 아마 이것이 천성이 아닌가 합니다. 자 아틀란티스 증후군을 가진 나쁜 아빠! 이제는 도시가 아닌 일본 마을로 분위기가 바뀝니다. 기대해 주세요)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