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의 두 가지 상징: 돌이 된 친구 이눅슉과 나무에 새긴 이야기, 토템폴
여행지를 떠올리면 그 도시를 대표하는 특별한 상징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밴쿠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 조형물이 있습니다. 바로 ‘이눅슉(Inukshuk)‘과 ‘토템폴(Totem Pole)‘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조각상을 넘어, 이 땅의 깊은 역사와 문화를 대변하는 살아있는 상징입니다.

돌로 빚은 인간, 이눅슉: 길을 안내하는 친구
밴쿠버의 잉글리시 베이 해변에 가면 마치 두 팔을 벌려 여행객을 환영하는 듯한 커다란 돌 조각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눅슉입니다. ‘사람의 모습을 닮은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눅슉은 원래 캐나다 북부의 이누이트(Inuit) 원주민들이 돌을 쌓아 만든 구조물입니다.
이눅슉은 길을 잃지 않도록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뿐만 아니라, 식량이 있는 곳이나 중요한 장소를 표시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즉, 이눅슉은 차가운 북극에서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친구’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밴쿠버의 이눅슉은 1986년 밴쿠버 세계 박람회(Expo ’86)를 기념하여 세워졌습니다. 이후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의 공식 엠블럼으로 채택되면서 전 세계에 밴쿠버의 따뜻한 환대 정신과 이누이트 문화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무에 새긴 영혼, 토템폴: 부족의 역사를 품다
이눅슉이 돌로 만든 이야기라면, 토템폴은 나무에 새겨진 이야기입니다. 밴쿠버의 스탠리 공원이나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UBC) 인류학 박물관에 가면 위로 길게 뻗은 토템폴들을 볼 수 있습니다. 화려한 색깔의 동물 형상과 사람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 이 기둥들은 단순히 장식용이 아닙니다.
토템폴은 밴쿠버가 속한 캐나다 서부 해안의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s) 부족들이 그들의 역사, 가계, 전설, 그리고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하고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각 기둥에 새겨진 곰, 독수리, 고래 등의 동물은 각 부족의 상징이나 조상을 의미하며,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토템폴은 한 부족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상징하는 살아있는 역사책인 셈입니다.
밴쿠버의 심장, 이눅슉과 토템폴
이눅슉과 토템폴은 각기 다른 캐나다 원주민 문화에서 왔지만, 밴쿠버라는 도시 안에서는 공통된 의미를 가집니다. 바로 ‘존중’과 ‘기억’입니다. 이 조형물들은 바쁜 현대 도시 밴쿠버가 그 땅의 원래 주인이었던 원주민들의 문화와 정신을 얼마나 깊이 존경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들을 통해 우리는 밴쿠버가 단순한 현대 도시가 아니라, 수천 년의 역사가 흐르는 깊은 뿌리를 가진 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밴쿠버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이눅슉과 토템폴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이들이 들려주는 무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그곳에서 진정한 밴쿠버의 심장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